“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면 3대 세습을 용인하기 어렵다. 37년간의 절대권력을 (후계자 교육이) 2년 정도인 젊은 세습 후계자가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는 의문이다.”


김정남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수차례 3대 후계 세습에 반대한다는 뜻을 피력했던 그였습니다. 김정남은 또 향후 북한의 권력 체제와 관련해 "젊은 후계자를 상징으로 존재시키면서 기존의 파워엘리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습니다. 이번 발언은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체제 후계에 대해 심경을 밝힌 것이어서 주목받았습니다. 국내 언론도 앞다퉈 일본 언론을 인용, 보도했습니다.


김정남은 2010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TV아사히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나 작년 1월 도쿄신문 인터뷰 이후 발언을 자제해왔습니다. 그는 작년 12월 김정일 사망 발표 직후 “신변에 위험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기본적으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정남은 1년 전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3대) 세습에 반대였지만,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조차 세습하지는 않았다”며 “사회주의에 어울리지 않고, 아버지도 반대였다. (후계는)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새해 첫 김정남 목소리는 e메일로 전해졌고, 작년 인터뷰는 중국 남부 한 도시에서 이뤄졌습니다. 두 건 모두 일본 도쿄신문 지면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김정남과의 꾸준한 교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특종이었을 겁니다. 한반도 전문가이자 김정남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도쿄신문 편집위원 고미 요지(五味洋治) 기자의 작품입니다. 어떻게 이런 잇단 단독 인터뷰가 가능했을까요. (관련 기사)



“김정남씨입니까.”

“그렇습니다.”

2004년 9월 베이징 공항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북일실무회담 취재 때문에 일명 ‘뻗치기’를 하던 일본 기자들이 김정남과 빼닮은 남성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남성이 바삐 움직이는 바람에 장시간 취재는 불가능한 상황. 당시 기자들은 자신의 명함을 이 남성에게 전했습니다. 그 취재진 속에 고미 기자도 있었습니다.


수개월 후 김정남이라고 하는 이 남성이 인사치레의 e메일을 기자들에게 보냈습니다. 당시 “김정남이라 자칭하는 인물”이라고 전제하고 공항에서 그와 주고받은 말과 e메일 건을 아사히신문이 보도했습니다. “김정남이 틀림없다”는 전문가의 견해도 덧붙여졌습니다.


그 후 고미 기자와 김정남의 e메일(한글) 연락이 이어졌습니다. 수년간 소식이 끊기다가도 어떤 때는 사흘에 한 번꼴로 김정남이 e메일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고미 기자는 한국어가 능통합니다. 연세어학당에서 공부하고 한국 특파원으로 3년 정도 있었다고 하네요. 중국 베이징에서도 근무경험이 있는 한반도 전문기자로 통합니다. 2004년 4월 베이징에서 김정일의 방중을 취재하던 중 한국 취재진과 함께 공안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김정남과는 지금까지 약 150통의 e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하네요. 단독 대면 인터뷰와 함께 중국 바에서 술도 한잔할 정도였다니 한때 후계자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김정일의 장남, 인간 김정남의 진솔된 모습 등 보도가 안된 뒷얘기가 궁금해질 따름입니다.


김정남의 e메일과 단독 인터뷰 내용을 엮은 책 <아버지 김정일과 나: 김정남 독점고백>이 1월20일에 나올 예정이라고 하네요. 책에는 김정남이 김정일에 대해 “엄격하고 정이 깊었다”고 말하고, 김정일이 예전에 “자식에게 권력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한 내용 등이 담긴다고 합니다.


책 출판 시기를 둘러싸고 김정남과 합의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미 기자는 이에 대해 김정남 자신의 생각을 공개하는 건 오히려 김정남이 바라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김정남은 “지금은 미묘한 시기”라며 출판은 좀 기다려 달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가 때인지라 북한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죠.


그러나 출판사 측과 고미 기자는 김정남과 같은 “평가될 만한” 인물의 목소리를 지금이야말로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출판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김정남은 3대세습의 영향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등 ‘놀기만 하는 인물’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책임감이 강하고 예의 바르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고미 기자는 평합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북한에 집중되는 가운데, 잊을 만하면 방송 카메라에 잡혀 한마디씩 던져왔던 김정남이 과연 어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까요. 중요한 얘기는 다 보도됐겠지만 뉴스와는 또 다른 현장감을 띨 것 같습니다. 북한 관련 이슈가 터지면 시내에 호외부터 깔리는, 어찌 보면 한국보다 더 북한 정권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많은 일본에선 팔릴 게 분명한 책으로 보입니다. 




 

Posted by 경향교열 고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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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팡이 2012.01.31 2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재밌을 거 같아요. 울나라서도 정발될까나요?



북한의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움직이면 다들 난리입니다.


특히 이들 부자에 대한 일본 언론의 관심은 장난이 아니죠. 가끔 '난리 브루스'를 떠는 정도가 과해 오보를 남발하지만. 




최근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들은 종횡무진이었다고 합니다. 중국 신화통신이 일본 기자들의 집요한 취재열기를 보도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한·중·일 정상회의에 온 신경이 집중됐던 그날, 일이 터졌습니다. 김정일을 태운 특별열차가 지린성 투먼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접한 일본 한 방송사의 중국 주재 국장은 곧바로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모든 시스템을 김정일 방중 보도로 돌렸습니다. 김정일이 들를 만한 창춘, 하얼빈, 상하이, 양저우에 기자를 파견했고 서울, 방콕에도 지원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김정일 방중 때) 매번 거액의 예산을 쏟아붓습니다. 구체적인 액수는 말할 수 없지만.”


현장에 도착해도 영상을 담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하지만 이 방송은 다행히도 양저우에서 김정일이 슈퍼마켓을 돌아보는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작년 5월 김정일 방중 때에는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단둥역에서 이른바 '뻗치기'를 했다고 하네요. "왔다. 왔다."  김정일을 태운 특별열차가 단둥역에 들어오던 순간, 기자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외치며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사진은 곧바로 도쿄 본사로 보내졌습니다. 이때 이 매체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김정일 방중'을 보도한 언론이 됐습니다.


알고 보니 당시 이 방송사 기자들은 김정일 방중 6개월 전부터 북한과 중국을 잇는 다리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 진을 쳐 24시간 지켜봤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중국에 들어오기 전날, 호텔 측은 숙박객 전원을 내쫓았습니다. 그래도 기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근처 호텔에 방을 잡고 김정일의 방중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순간을 포착한 기자는 회사에서 상을 받고 방송사 측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들 김정일이나 그의 아들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까요.


일본 언론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김정남을 비롯한 김정일 아들의 사진 한 장, 인터뷰 한 꼭지에 유독 집착이 강합니다.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시청률 상승은 물론이요, 가판대에 놓인 신문이 불티나게 팔립니다.


북한의 미사일은 늘 일본 열도를 향하고 있기에,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권력 지형 판도 변화는 일본의 미래와 직결되기에 북한 권력의 움직임은 한순간도 놓치면 안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공식적인 정보는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셈이죠.


김현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취재열기만 봐도 일본 언론의 대북 관심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김정일 방중 때 ‘북한 황태자의 첫 단독 중국 방문’이라는 국내 언론의 보도는 외신도 인용했으니 전 세계적인 오보가 됐습니다. 석간은 김정은 방중을 1면 머리기사로 내보냈습니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확인될 때까지 오보는 9시간 가까이 계속됐습니다. 이번 사태를 두고 한 언론은 "리비아 파견 정보원의 노출 사건이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파동 같은 일"을 언급하며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평소 일본 언론은 남들보다 빨리 보도해야 한다는 본능을 훤히 내보입니다. 주요 판결이 있는 날엔 법원 앞에 조그마한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어 놓고, 판결이 나는 순간 여러 명의 기자들이 타사보다 빨리 보도하기 위해 건물 안에서 앞다퉈 달려나오는 광경을 연출합니다. 가속도를 이기지 못해 카메라 코앞에서 쓰러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자세로 숨을 헐떡이며 판결 결과만 짧게 보도합니다. 기자의 생명은 속도에 달렸다는 걸 몸바쳐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특히 북한과 관련된 '특종'은 파급력이 크니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욕심내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1994년 산케이신문의 김정일 ‘피격설’ 보도처럼 늘 ‘오보’라는 치명타를 감수해야 합니다. 


김정일의 건강 악화와 함께 후계자설이 확산될 무렵, 일본 언론이 김정은의 ‘진짜 모습’을 보도할 땐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여러 오보가 있지만 그래도 기억에 오래 남을 사건이 있었죠. 아사히TV가 김정일의 3남 김정은(당시엔 김정운이라 했음)의 "최근 사진을 확보해 특종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사진 속 인물은 북한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었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정작 본인은 일상생활이 엉망진창이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본 방송국과 큰돈을 받고 합의했다’는 거짓 소문을 듣고 연락이 끊겼던 지인에게조차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네요.



아래는 당시 주인공을 인터뷰한 '레이디경향'의 기사입니다. 언론의 '특종' 경쟁이 야기한 인권침해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졸지에 북한 후계자가 됐던 그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Posted by 경향교열 고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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