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신문기자(서울 특파원)는 말했다. “헷갈린다”고. 한국 정당 이름을 두고 한 말이다.


야당들이 헤쳐모이더니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생기지 않나, 여당인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뀌니 헷갈릴 만도 할 터. 나 자신조차도 교열을 볼 때 가끔 민주통합당이 통합민주당으로 돌변한 기사가 시험에 들게 할 때도 있으니. 
 
일본도 과거 여러 당이 통합해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한국처럼 여당(지금이나 과거에나)이 이렇게 쉽게 이름을 바꿀 수 있는지 그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꾸자 당일 일본 언론도 즉각 여당이 이름을 바꿨다며 새누리의 뜻과 함께 기사를 내보냈다.


당명은 당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이름만 봐도 당의 색깔이나 지향하는 바를 알게끔 짓는다. 개인적으로 새누리당이 썩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그들은 새출발하겠다는데.

이참에 일본엔 어떤 당명이 있는지, 그리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셀 수 없는 당이 태어났고 사라졌고 통합됐고 지금도 건재한다.


2차대전 전 생긴 정당 이름은 딱딱하면서도 다소 근엄하다. 자유당, 입헌개진당, 입헌제정당, 사회민주당, 입헌동지회, 농민노동당, 사회민중당, 노동자농민당, 국민동맹, 일본국가사회당, 동방회, 일본무산당, 노동국민당….


현재 일본 국회에서 의석을 갖고 있는 당은 민주당을 비롯해 자유민주당, 공명당, 모두의당,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 일어나라 일본, 신당개혁 등이 이름을 올린다.


국회 의석을 확보한 이력이 있는 당으론 입헌양정회, 신사회당, 행복실현당 등이 있으며, 선거에 나섰으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정당으론 일본국민정치연합, 대일본애국당, 일본노동당, 유신정당, 세계경제공동체당, 신당프리웨이브클럽, 9조넷 등이 있다.


다소 눈길을 끄는 당을 보자. “국회의원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여성당. 화장품 방문판매 회사가 지지단체로 선거에선 고배를 마셨다.


"웃어보자"는 일본스마일당(아래 사진). 재단법인 스마일 테라피 협회 회장이 설립한 정당으로 도쿄도의회,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대감세, 소정부, 스마일 교육, 우울병 및 자살 대책 마련, 전면금연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지금은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의석을 확보한 바 있는 정당으론 일본인민당, 녹풍회, 신자유당, 샐러리맨신당, 복지당, 진보당, 신진당, 자유연합, 무소속의 모임 등이 존재했다.


이 중 스포츠평화당이 눈길을 끈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전설이자 대부인 안토니오 이노키(아래 사진)가 1989년 설립한 정당이다. 물론 지금은 해체되고 없다. 참의원 선거 비례대표로 이노키와 전 프로야구 선수가 당선된 바 있다.

이노키라 하면 우리에겐 역도산의 제자로 김일 선수의 동료이자 라이벌로 친숙하다. 김일,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역도산 1기 문하생으로 일본 레슬링계를 이끌었다. 현재 격투계뿐만 아니라 방송계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를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겡키데스카"라는 외침과 일명 ‘투혼 싸대기’다. 링 위에서 오른팔을 힘차게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며 관중과 함께 "하나, 둘, 셋, 다~~~!"라고 소리친다.  또 이노키의 팬들은 그의 우람한 손바닥을 맞으면 투혼을 얻는다 믿어 눈을 질끈 감으며 뺨을 내민다. 이 '투혼 싸대기'는 그가 국회의원이 된 후 시작한 퍼포먼스로 알려져 있다. 그를 캐릭터로 한 빠찡꼬 슬롯머신도 나왔을 정도다.


의사이자 작가인 나다이 나다가 설립한 인터넷상의 가상정당인 '노인당'도 있다. 홈페이지를 보니 국가를 개혁하기 위해 노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노인에게만 입당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당은 노인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좋게 바꿀려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말한다. 입회비나 당비는 없다. 가상정당이기에. 입당 절차를 보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노인당원'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설마? 했다. 하지만 정말 있었다. 바로 UFO당이다. 정식명칭은 ‘개성론(開星論)의 UFO당’. 1985년 설립된 단체로 전신은 UFO당, 일본UFO당이다. 그들이 만나고픈 이는 우주인이다. 물론 선거에서는 떨어졌다. 우주인과 우호적인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주요국 일부 고위인사만 아는 UFO 기밀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지금은 장기 휴면상태다.


진리당이라는 웅장한 이름의 당도 있다. 당 대표는 아사하라 쇼코. 귀에 익은 이름이다. 바로 도쿄 사린가스 테러를 일으킨 옴진리교 교주다.

이 같은 당명을 보자니 한국 정당 이름은 그래도 얌전한 편이라는 생각.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생각과 사람, 이름까지 바꾸게 된다면 우리 당은 완전히 새로운 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앞으로도 확고한 의지를 갖고 이러한 쇄신 노력을 계속한다면 국민들께서 다시 믿음을 줄 것이다.”


하지만 바꾼 지 얼마 안돼 새 이름이 무색해지게 당을 흔드는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좀 더 늦게 이름을 바꿨으면 하는 생각도 할 터. 하지만 어쩌랴. 이제 가신들의 비리가 터지면 한나라당이 아닌 새나라당 소속으로 보도될 테니. 비대위는 점점 답답해질 뿐이다.


칼 포퍼는 정치에서 훌륭한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보다 그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무책임하게 권력행사만 하는지 계속 주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새누리당, 새이름답게 부디 책임 정치를 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건 한나라당이 국민을 대상으로 당명을 공모했다는 걸 몰랐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홈피에 들어갈 일이 없으니 알 길이 없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누리꾼님들은 여러 아이디어를 내셨더라.
차떼기당, 딴나라당이 거론된 건 물론이다.
디도스공격당, 비서가했당, 간당간당, 우끼당,
가지가지당, 가카께선절대그러실분이아니당, 북한소행이당,
개념없당, 군면제안보당, 그거다오해당, 너그러다혼난당, 뒤끝작렬당, 사실상승리당, 주어없당, 지금은곤란하당….


2030세대 등 대중과의 소통을 갈망했을 여당은 대중 친화적이고 정체성이 확 느껴지는 당 이름을 선택했을 것이다.

늦었지만 확실한 당명을 추천하고 싶다. 정확한 뜻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은 적 있는, 기억하고 쉬워 가장 대중 친화적일 '숭구리당당숭당당수구수구당당숭당당'이다.

 편의상 줄인다면 ‘수구당’이다.







 



 

Posted by 경향교열 고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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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팡이 2012.02.23 15: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UFO당, 스마일당.. 이름만으로도 뭘 추구(?)하는지 알 수 있네요.

    쁘라스. 한나라당 새 당명 아이디어 센스에 뽱뽱 터지고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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