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16일 새벽 5시30분, 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찰은 야마나시현 가미쿠이시키의 한 시설 출입구를 절단기로 따고 들어갔습니다. 경찰의 타깃은 일본 심장부를 아비규환으로 만든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였습니다. 외신기자 등 취재진 200여명이 경찰의 수색 순간을 보도하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사하라는 체포되기 직전 명상 중이었다고 합니다.


3개월 전 3월20일 출근시간대 옴진리교는 도쿄 지하철 마루노우치·히비야·지요다선 등 3개 노선, 5개 차량에 맹독성 사린가스를 살포해 13명을 숨지게 하고, 6300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시민들은 근육이 마비되고 콧물과 눈물을 흘렸고 구토까지 했습니다. 어떤 이는 숨을 쉴 수조차 없었고 일부는 동공이 수축돼 갑자기 눈이 안보이는 등 시민들은 지하철 곳곳에서 쓰러져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교주 아사하라가 체포된 이후 일본 당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용의자들을 추적하는 한편, 사린 또는 무기류 색출, 지하철 테러에 대비한 경계강화 등을 지시했죠.

ⓒ요미우리신문


16년이 지난 올해 11월21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사린가스를 만드는 데 관여한 교단 간부 엔도 세이치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했습니다. 수의사 출신인 엔도는 교단에서 사린가스 등을 개발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994년 마쓰모토 사린 사건과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 등 4건에서 19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로써 옴진리교 재판은 1995년 시작 후 16년 만에 교주 아사하라 등 13명의 사형 확정으로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실행범 3명은 여전히 도주 중이라고 합니다.


일본 당국은 사건 직후에 480여명을 체포했고 189명을 기소했습니다. 13명은 사형, 5명에겐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167명이 유기징역 실형 및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공포의 이 옴진리교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교주가 사형이 확정됐어도 교세는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죠. 교단을 ‘알레프(Aleph)’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여전히 ‘아마겟돈’을 주장하는 아사하라를 추종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옴진리교, 교주 사형 확정됐어도 교세 확장  



불교와 요가에 종말론적인 기독교적 철학을 결합한 옴진리교는 1984년 출발했습니다. 획일적인 사회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끼던 젊은층이 추종자들의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설립 10년 만에 일본 내 신도수 1만명, 해외에도 4개 지부를 둘 정도로 급성장했죠.


자칭 일본에서 유일한 “최종해탈자”라는 아사하라는 신과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설파해왔습니다. 1995년 11월에 핵·생물·화학전으로 인류가 종말을 맞게 되지만 옴진리교 신자들은 선과 악의 최후 결전에서 승리해 천년왕국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그 천년왕국의 왕이라는 것이죠.


직접 작사, 작곡해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 라이터이기도 했다는 아사하라의 아마겟돈 사상은 <우주전함 야마토>가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신자들에겐 “내 전생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네요.


아사하라 교주의 여자관계는 복잡합니다. 혼인관계를 맺은 마쓰모토 도모코 외에도 재정을 담당했던 간부 이시이 히사코(아래 사진) 등 5명의 애인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내인 마쓰모토와의 사이에는 6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최근 일본 여성주간지 ‘여성자신’이 아사하라의 여인들의 근황을 보도했는데요.


보도에 따르면 아사하라의 아내 마쓰모토와 자녀들은 현재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아내 마쓰모토는 지금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인 간부로 알려진 한 여성은 과거엔 아사하라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으나 그 사건 후에는 비참한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본 수사당국 관계자는 “그녀는 지금, 도쿄 교외에 있는 집에서 부모와 살고 있다. 복역 중에 뇌출혈로 쓰러진 후 지금도 후유증으로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옴진리교의 재무담당이었으며 "여제"로 불린 이시이는 아사하라와의 사이에 쌍둥이를 포함한 3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현재 자녀들과 살지 않고 가나가와현 근교에서 아버지와 둘이서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 옴진리교 피해대책 변호단의 변호사는 “옴진리교에 연관된 여성들은 가족과 화해한 이들이 많다. 반면 교단으로부터 빠져나왔지만 인간관계가 삐걱거려 고독 속에서 살고 있는 이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옴진리교가) 많은 여성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은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아사하라 교주에 대한 에피소드에 눈길이 갑니다. 공중부양으로 40cm까지 떴다고 자부하는 인물입니다. 물속에서 숨을 멈추는 수행에선 5분 가까이 견딘 신자에게 “뭘 무서워하나”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15초만에 물속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아사하라가 존경한 인물은 이시하라 신타로 현 도쿄도지사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타적인 데다 핵무기 보유를 주장하며 일본 군국주의 회귀를 바라는 이 양반이 총리가 되면 큰일날 것이라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아사하라 교주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적이기 때문이라네요. 아사하라와 이시하라. 이름도 참 비슷하네요. 교주는 이시하라 같은 사람이 일본의 수장이 된다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이시하라가 집권하면 평소 주창한 아마겟돈이 빨리 도래할 것이라 믿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아사하라 교주의 유명세는 국경을 초월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출근길 '묻지마' 사린가스 테러는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사건이었습니다. 아사하라는 타임지 1995년 4월3일, 일본인으로서는 1971년 10월4일자의 히로히토 일왕 이후 23년 반 만에 표지인물이 되기도 했죠.


아사하라는 늘 “(나는) 시력이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옴진리교 관련 재판정에서 선서문을 변호사가 말하는 대로 비교적 빠른 시간에 써냈는가 하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평소에 유명 연예인의 누드 사진집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는 경찰조사 때도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를 이유로 조서에 사인을 거부했으나, 그는 “형사 양반은 멋지네요” “당신은 (형사 드라마) <태양을 향해 외쳐라>의 보스 같다”는 등의 발언을 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그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미인이었다는 점만 봐도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교주 아사하라는 체포될 당시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믿진 않겠지만, 앞을 볼 수 없는 내가 그런 일(살인)이 가능했겠느냐.”

사형이 확정된 그는 지금도 가스 살포 지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경향교열 고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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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은영 2012.06.15 14: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참 어이가 없네요 너무 바보같아서 재밋고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