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은 차를 운전하고 나머지 2명은 칼로 범행한다. 죽고 싶지 않으면 게임에 참가하지 마라. ‘아키하바라’ 때보다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느닷없는 살인 예고에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엉뚱하게도 무차별 살인사건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발생했지만.

 

다행히 범죄를 예고한 당일 일본에서 우려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번 살인 예고에 일본사회가 바짝 긴장했다. 다들 208년 6월8일 발생한 ‘아키하바라 도리마(길거리의 악마)’ 사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당시 아키하바라 도리마도 범행을 예고한 터였다.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했다.

아키하바라 도리마 사건 현장검증의 모습. 위키피디아

그날 점신시간대, 2톤 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돌진, 파란불을 기다리던 행인 5명을 들이받았다. 이 트럭은 이어 신호 대기 중이던 택시와 충돌해 멈춰 섰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단순한 교통사고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트럭에서 내린 남성은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했다. 행인과 경찰관 등 14명을 소지하고 있던 칼로 찔렀다.  괴성을 지르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다가 결국 경찰에 붙잡혔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였다.


당시 25세였던 범인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 심한 고립감을 인터넷에 털어놓으며 "승자는 모두 죽여버려"라는 글을 남기고 예고한 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전까지 휴대폰을 통해1000여건의 글을 남겼다. 휴대폰으로 마음을 달래더니 점점 고립감에 빠져들었다. 그러곤 살인을 예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범행 당일 오전엔 “아키하바라에서 살인한다. 차로 들이받은 후 차를 쓸 수 없게 되면 칼을 꺼낼 것이다. 모두들 안녕”이라는 글을 올렸다.

체포 후엔 “생활에 지쳤다. 세상이 싫어졌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아키하바라에 왔다. (그 대상은) 누구라도 상관없었다”고 진술했다.
 

아키하바라 사건 범인이 체포되기 직전의 모습.

아키하바라 도리마 사건 후엔 살인하겠다는 등 범죄예고가 줄을 이어 7월7일(사건 발생 후 1개월)까지 33명이 검거됐다. 사건 전엔 월 2, 3건에 불과하던 범죄예고 글이 사건 후 한 달에만 100건 이상이 올라왔다. 대부분이 10, 20대였다. 초등생이 올린 글도 있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행인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이른바 ‘도리마’ 사건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67건에 달한다. 아키하바라 사건이 발생한 지 1개월여가 지난 후 도쿄의 한 서점에서도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30대 남성이 서점에 들어가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죽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아키하바라 사건 이전, 일본 범죄사상 전대미문의 무차별 살인사건이 있었다. 1938년 5월21일 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카야마현에서 발생한 ‘쓰야마 사건’.  도이 무쓰오 사건이라고도 한다. 당시 21살이던 도이는 2시간도 안된 시간에 30명을 무차별 살해했다. 피바다를 본 후 그는 이내 자살했다.



2살 때 아버지를, 3살 때 어머니를 모두 폐결핵으로 떠나보낸 후 누나와 함께 할머니와 살던 도이. 학교성적은 우수했고 활달한 성격이었지만. 누나가 시집간 뒤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범행 1년 전 징병검사 때(중일전쟁) 그는 결핵으로 불합격 처분을 받는다. 이때부터 삐딱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 전에 관계를 맺던 여성들이 결핵을 이유로 그를 멀리한 것이다.


그를 무시한 여성들에 대한 복수심이 차올랐을 터. 유서에서도 범행 날짜를 고른 이유가 드러난다. 이전 그와 관계를 맺었지만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여성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날을 잡았던 것. 하지만 그가 최초로 죽인 이는 전 애인도 아닌, 그를 키워준 할머니였다. 도끼로 할머니의 목을 내리쳐 즉사시켰다. 그는 할머니를 죽인 이유를 할머니가 “살인자의 할머니”로 살아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유서에 적었다고 한다. 이후 아주 조그만 마을의 이웃들을 1시간30여분 동안 엽총과 일본도로 무참히 살해했다. 사망자 30명 중 5명이 16세 이하였다.

범행도 계획적이고 살해 순간에도 냉정했다고 증언자들은 입을 모은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전봇대에 올라 전선을 잘라 마을을 암흑에 빠트린 그는  검정 교복을 입고 머리에는 소형 회중전등을 달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쉽게 살인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는 특히 범행 전에 “결핵으로 죽는다면 ‘아베 사다 사건’ 이상의 엄청난 짓을 저지를 것”이라고 친구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도리마의 살인예고인 셈이다. 1936년 발생한 아베 사다 사건에 평소 큰 관심을 보였던 그는 한 지인에겐 비밀리에 유통되던 피의자 아베 사다의 진술서 복사본을 보였줬다고 한다.


그가 무차별 살인행각을 벌이기 2년 전에 발생한 아베 사다 사건은 지금 들어도 오싹하다. 과격한 성 묘사와 엽기성으로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하드코어 작품 <감각의 제국>으로 영화화된 사건이다.



1936년 5월 21일 도쿄 시나가와의 한 여관에서 아베는 자신의 정부를 죽인다. 수면제를 마시게 한 뒤 목을 조른다. 죽은 애인의 성기를 자른다. 그러고는 핏물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했다.’ 그녀는 수갑을 찬 뒤에도 태연했다고 한다.



에도시대 수필집에 그려진 길거리 악마.



Posted by 경향교열 고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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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d 2011.04.19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못받았거나 성장과정이 잘못된 사람이다. 제가 못먹는 떡에 침이라도 뱉는 심보를 지닌 사람.그런 환경이라고 모두 그 사람같지는 않을터.일본의 자기가 소속한 이외의 집단에 대한 배타주의가 이런 외톨이의 소외감을 배가시켰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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