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자들이 가슴도 가리지 않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다니…."

에도시대 말기 일본의 쇄국 빗장을 풀러 온 페리 제독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대중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남녀들이 중요한 부분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한 장소에서 목욕하는 있는 게 아닌가.
  

페리 제독이 '일본원정기'에 그린 일본의 혼욕 문화.

일본에서 오래된 풍습인 남녀 혼탕(일본은 혼욕이라 칭함)의 얘기는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재와 싸움은 에도의 꽃'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구가 많고 목조가옥이 밀집한 에도에서는 화재사고가 빈번했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이 욕실을 만들어 목욕하는 일은 먼나라 얘기였다.

하지만 이세 요이치라는 자가 유료 입욕시설을 지어 최초로 일본 대중 목욕탕(센토) 시대를 열었다. 이후 에도에는 목욕탕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목욕탕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남녀 혼욕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사람들은 남녀가 같이 목욕하는 것을 외설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혼욕의 주요 배경에는 목욕탕 업주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남녀 탕을 따로 만들려면 돈이 더 써야 하기 때문에 혼욕을 고집한 것이다.

당시 목욕탕은 입구가 좁고 창도 없고 어두웠다. 가끔 풍기문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서민들은 혼욕이 풍속을 해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 인물이 혼욕을 못마땅했다. 에도막부 제8대 쇼군 마쓰다이라 사다노부, 그는 혼욕이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791년 혼욕금지령을 내렸다. 가장 타격이 큰 쪽은 물론 목욕탕 업주 측이었다. 이때부터 당국과 업주 간의 밀고 당기기가 전개된다.

여탕을 따로 만들길 거부한 업주는 머리를 짜더니 '시간제' 운영이라는 묘안을 냈다. 하루 중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남자들이, 또 다른 시간은 여자들이 이용하게끔 한 것이다. 지금도 혼욕 온천에서는 이 같은 시간제를 취하는 곳이 있다.

그러나 나중에 막부는 이런 시간제도 금지했다. 그러자 업주 측은 '남자의 날'과 '여자의 날'을 만들었다. 끝자리가 1과 6인 날만 여자들이 목욕할 수 있게 했다. 여자의 날과 남자의 날을 반반씩 하면 될 텐데라고 생각되겠지만, 당시 일본에서도 남존여비 사상이 뚜렸했음을 알 수 있다. 날짜 수가 적었기에 '여자의 날'만 되면 목욕탕은 발디딜 틈이 없이 대혼잡을 이뤘다.

여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결국 폭발했다. 남성전용의 날에, 목욕하고픈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여성들이 기습(?)하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자 막부의 혼욕금지 의욕은 약해졌고 자연스레 혼욕이 묵인되게 됐다.

그렇다고 혼욕의 수난이 멈춘 게 아니다. 앞서 말한 페리 제독은 혼욕 현장을 목격하고는 "일본인은 음탕하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고 1858년 혼욕 금지령이 발표됐다. 도심에서는 단속이 강화됐지만 당시에도 혼욕금지령이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탈아입구' 노선을 견지했던 메이지정부는 1869년 혼욕금지령을 내린 데 모자라 1872년 사람 앞에서 옷을 벗으면 안된다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당시 한 잡지는 "나체와 상반신 노출이 안된다면 언제나 상반신을 노출하고 있는 석가모니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비꼬았다.

니가타현의 한 혼욕 노천탕. 간단한 탈의실이 있지만 남녀를 구별하는 표시가 없다.(위키피디아)

이후에도 혼욕금지령이 자주 내려졌으나 지방 온천지 등 여러 곳에서 혼욕이 당연시되는 문화가 이어졌다. 고도성장기에 접어들면서 혼욕문화와는 거리가 먼 도시 관광객들이 지방으로 몰려오자 '문화적 쇼크' 때문에 수입이 줄 것으로 판단한 현지의 혼욕 여관과 호텔이 남녀 탕을 따로 만드는 증·개축 공사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혼욕탕의 수는 급감하게 된다. 그래도 혼탕을 오래된 풍습으로 여기는 곳에서는 지금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리스>의 이병헌은 일본 로케이션 촬영 때 노천탕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갑자기 일본 아줌마들이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탕에 들어오는 사건과 조우했다.  그는 "얘기만 들었지만 문화적 차이를 몸소 느꼈다"고 했다. 당시 이병헌은 수증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무사히 온천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혼욕해도 수증기가 모자이크 역할을 하니 안심해도 된다는 얘기?!

최근 일본 지자체에선 혼욕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 혼욕을 금지하던 지자체가 조례를 바꾸면서까지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온천에서의 혼욕은 그렇다 치자. 뭐 가릴 거 다 가리면 될 테니깐. 근데 동네 목욕탕에서, 그것도 무방비 상태에서 느닷없이 청소 아줌마(어떤 땐 아가씨 직원)가 들어와 남탕을 제 집인 양 휘젓고 다닐 때의 황당함이란.

Posted by 경향교열 고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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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고은 2010.12.31 14: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 이런 것이었군요! 솔솔한 정보네요.ㅎㅎ

  2. 음.. 2011.11.03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쿄에 젊은 여성들 많이 오는데 어딘지 알고싶네요.

    없으면 곧 생겼으면 좋겠어요.

  3. 저도깜놀 2012.02.11 2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큐슈지방 한 온천탕에 갔는데

    우리는 홀라당 벗고 목욕중인데

    일하는 아줌마가 휘젓고 다녀서 깜놀..

  4. 백남해 2012.05.10 1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일본 목욕탕에서 청소 아줌마와 눈을 마주친적이 있습니다.

    쩝....